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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며칠째 잠을 못 잔다고 하시면 처음엔 그냥 노인 불면증이겠거니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불면증'이 사실은 치매의 초기 신호였다는 걸 병원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병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수년 전부터 조각조각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불면증과 이상 행동, 치매의 첫 신호였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 시어머님은 잠을 못 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낮에는 코까지 골며 주무시면서도, 밤이면 한숨도 못 잤다고 이웃마다 붙잡고 하소연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사별 후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우울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약을 지어드리고, 마당에 탁구대를 놓고, 함께 산책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환경을 바꿔드려도 '잠 못 잔다'는 호소는 점점 강박처럼 굳어갔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교회 교우의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긴 소매 옷 위에 짧은 반소매 여름 블라우스를 껴입고 전도를 나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봄이었습니다. 그분은 "예전과 달리 뭔가에 쫓기듯 허둥지둥하신다"고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저는 시어머님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수면 강박과 옷차림 혼란, 불안한 행동 패턴은 치매 전구 증상(prodromal symptom)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전구 증상이란 본격적인 질환이 발현되기 전에 나타나는 초기 경고 신호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치매는 기억력 저하만이 아니라 판단력·지남력·행동 조절 능력의 복합적 저하를 포함합니다(출처: WHO Dementia Fact Sheet). 제가 경험한 시어머님의 모습이 정확히 그 복합적 저하에 해당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신호들은 가족이 가장 늦게 알아챕니다. 매일 보다 보면 '원래 저런 분이지'라고 익숙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끔 만나는 지인이나 이웃이 먼저 이상함을 눈치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전화가 없었다면 저는 몇 달을 더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 수면 강박: 실제로 자면서도 한숨도 못 잔다고 반복적으로 호소하는 경우
- 옷차림 혼란: 계절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겹쳐 입거나 순서를 혼동하는 경우
- 불안·초조 행동: 이유 없이 서두르거나 쫓기는 듯한 모습이 반복되는 경우
- 반복적 하소연: 같은 내용을 만나는 사람마다 동일하게 반복하는 경우
기질성 우울증과 뇌위축, 진단 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님은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차로 한 시간이 넘는 병원을 고집하셨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뒤에야 그 선택 방식 자체도 증상의 일부였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외래 진료실에서 뇌 CT 촬영과 기초 인지 검사를 마친 뒤, 의사는 보호자인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뇌 영상을 보여주며 "뇌위축(brain atrophy)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뇌위축이란 뇌세포가 손상되거나 사멸하면서 뇌 조직의 부피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쪼그라드는 것인데, 이것이 인지 기능 저하와 직결됩니다. 영상 속 시어머님의 뇌는 나이에 비해 뚜렷하게 수축되어 있었습니다.
최종 진단명은 기질성 우울증(organic depression) 및 노인성 치매였습니다. 기질성 우울증이란 뇌나 신체 기관의 실질적인 손상에서 비롯된 우울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한 심리적 우울과 달리, 뇌 자체의 구조적 변화가 원인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젊을 때부터 심한 의심과 편집적 성향, 즉 편집증(paranoia)을 가진 분들은 체력이 뒷받침될 때는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노화로 체력이 떨어지면 그 조절 능력이 무너지면서 치매 증상으로 발전한다고요. 여기서 편집증이란 근거 없는 의심과 피해 의식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고 패턴을 의미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어머님의 행동들, 황당하게 느꼈던 순간들이 하나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이었던 것입니다. 섭섭함이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연민이 들어왔습니다. 중앙치매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약 10.3%로,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숫자로 보면 멀게 느껴지지만, 제 경험상 그 한 명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노인이 잠을 못 잔다고 할 때 무조건 치매를 의심해야 하나요?
A. 불면증 자체가 곧 치매를 뜻하진 않습니다. 다만 실제로 자고 있으면서도 전혀 못 잔다고 강박적으로 반복 호소하거나, 낮과 밤이 뒤바뀐 수면 패턴이 동반된다면 단순 불면증이 아닌 치매 전구 증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행동 변화와 함께 나타날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치매 초기에 어떤 과를 가야 하나요?
A.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또는 신경과에서 초기 진단이 가능합니다. 뇌 CT나 MRI를 통해 뇌위축 여부를 확인하고, 인지 기능 검사와 보호자 면담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 정신과에서 뇌 단층촬영과 보호자 상담을 병행해 진단을 받았습니다.
Q. 기질성 우울증과 일반 우울증은 치료 방법이 다른가요?
A. 접근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 우울증은 심리 상담과 항우울제 치료가 중심이지만, 기질성 우울증은 뇌 자체의 구조적 변화가 원인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와 함께 인지 기능 저하에 대한 관리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전문의의 정확한 감별 진단이 먼저입니다.
Q. 평소 고집이 세고 의심이 많은 어르신이라면 치매 위험이 더 높은가요?
A. 의학적으로 편집적 성향이 치매 위험을 직접 높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의 경험과 주치의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런 성향이 있는 분들은 체력이 저하되는 노년기에 기존의 조절 능력이 무너지면서 증상이 급격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이 미리 변화를 주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 아닙니다. 제가 겪어보니 신호는 훨씬 일찍부터 와 있었고, 저는 그것을 고집이나 성격으로 읽고 넘겼습니다. 불면 호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반복적인 허둥거림.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모아놓으니 분명한 패턴이었습니다.
진단 이후 저는 시어머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섭섭하거나 황당했던 기억들이 '그분으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다시 읽혔습니다. 가족 중 비슷한 변화를 느끼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행동 패턴을 기록해 두시길 권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첫 방문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 선별 검사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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