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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누군가가 옷을 거꾸로 입거나,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할 때 처음엔 그냥 넘기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게 치매의 시작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시어머님을 모시며 직접 겪어보니,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 오랜 시간 조금씩 드러나는 병이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넘겼던 초기 증상들
어느 이른 봄날, 같은 교회 교우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시어머님이 긴 팔 겉옷 위에 짧은 반소매 여름 블라우스를 걸치고 전도를 나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머릿속이 멈췄습니다. 평소 단정하게 차려입던 분이셨는데, 그런 옷차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나가셨다는 게 낯설었습니다.
그 교우는 또 이런 말도 전했습니다. 전도를 하다가도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갑자기 허둥지둥 집으로 들어가신다고요. 저는 그날 이후부터 시어머님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성격 탓이려니, 연세가 드셔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치매 초기 증상은 생각보다 일상 속에 섞여 있습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이유 없는 불안과 초조함, 짧아진 집중력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신호들은 보호자가 가장 먼저 눈치채게 되는데, 문제는 '설마'라는 마음이 판단을 흐린다는 점입니다. 저도 한동안 그 '설마' 때문에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 계절과 맞지 않는 옷차림, 순서가 뒤바뀐 착의 행동
- 이유 없이 허둥대거나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 행동
- 예전과 달리 익숙한 일과를 갑자기 중단하거나 회피하는 모습
- 주변 사람에 대한 과도한 의심이나 피해의식
정신과 진료, 그리고 기질성 우울증이라는 진단
시어머님을 설득해 정신과 진료를 받기로 한 날,
집에서 가까운 병원 대신 교회 아는 분이 과장으로 있다는 B병원을 선택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병원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던 분이라,
그 조건이라도 맞춰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검사는 뇌 단층촬영(CT)을 포함한 기초검사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CT란 뇌의 구조적 변화를 단면 영상으로 확인하는 검사로, 뇌 위축이나 손상을 초기에 파악하는 데 활용됩니다. 결과를 보신 의사는 뇌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고 하셨고, 저를 따로 불러 그동안 함께 살면서 느꼈던 점들을 소상히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숨김없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의사의 최종 진단은 '기질성 우울증 및 노인성 치매'였습니다.
기질성 우울증이란 단순히 마음이 우울한 상태가 아니라,
뇌의 기질적 변화, 즉 뇌 자체의 구조적·기능적 이상으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의지나 환경과 상관없이 뇌가 먼저 변해서 생기는 우울증입니다.
의사는 시어머님이 젊어서부터 타인을 믿지 못하는 편집증적 성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편집증이란 근거 없는 의심과 불신이 지속되는 심리 상태로, 체력이 뒷받침될 때는 스스로 억제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제력이 떨어지면 그 성향이 겉으로 드러나고 치매 증상과 맞물려 악화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섭섭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다른 색깔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치매 치료의 현실, 약의 균형이 무너지면 생기는 일
진단 이후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그게 또 다른 고비의 시작이었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 집에 데려다 달라"거나 "제 방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지금 있는 곳이 당신 집인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셨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외래 진료 때 의사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자, 이번엔 치매 치료에 비중을 둔 처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치매 치료제는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AChEI) 계열이 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 AChEI란 뇌 안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분해되지 않도록 막아
인지 기능을 유지시키는 약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약을 늘리면 이번엔 우울증이 급속도로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우울증을 잡으면 치매가 나빠지고, 치매를 잡으면 우울증이 올라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균형이 조금만 무너지면 시어머님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전혀 엉뚱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그 시간들을 겪어보니, 치매 치료는 약 하나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보호자가 변화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의사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약 10%에 달하며, 80세 이상에서는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집니다
(출처: 중앙치매센터).
이 수치는 치매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진단 이후, 연민이 이해를 대신하기까지
의사의 진단을 듣기 전까지, 저는 시어머님의 행동을 성격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왜 저렇게 의심이 많을까, 왜 매사에 불안해할까, 왜 고집을 꺾지 않을까 하는 불만이 마음 어딘가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그 장면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시어머님으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불만이 아니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이다'라는 인식이 생기자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실 때도, 엉뚱한 말씀을 하실 때도, 화가 나기 전에
'아, 지금 뇌가 그렇게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치매를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닌 뇌 질환으로 명확히 분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5,500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숫자가 주는 의미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그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가장 힘든 순간은 체력적인 소진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이었습니다.
치매 보호자라면 진단 초기에 반드시 보호자 지원 프로그램이나 상담 자원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면 어느 순간 무너집니다. 저는 그걸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요약:
자주 묻는 질문
Q. 치매 초기 증상이랑 그냥 건망증이랑 어떻게 구별하나요?
A.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기억해내지만, 치매 초기에는 힌트를 줘도 아예 그 상황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 건망증이라 생각했는데,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나 이유 없는 불안 행동이 반복될 때는
전문 기관의 진단을 받아보시는 게 맞습니다.
증상이 일상 기능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면 그건 단순 건망증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기질성 우울증이 치매로 발전할 수 있나요?
A. 네,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질성 우울증은 뇌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뇌 위축이 진행되면서 치매 증상과 동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어머님의 진단도 '기질성 우울증 및 노인성 치매' 두 가지가 함께 나왔습니다.
편집증적 성향이 오래된 분이라면 더욱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게 제가 직접 겪어보며 내린 결론입니다.
Q. 치매 약을 먹으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게 정상인가요?
A. 치매 치료제와 항우울제를 함께 사용할 때 약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착각, 혼란, 수면 장애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약을 바꾼 뒤 오히려 낯선 증상이 생기면 바로 담당 의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해 약을 조절하는 건 위험합니다.
Q. 치매 환자를 모시는 보호자는 어떻게 버텨야 하나요?
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체력보다 감정이 먼저 무너집니다. 치매안심센터 같은 공공 기관에서는 보호자 상담과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하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결론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보니,
이상한 옷차림 하나, 뭔가에 쫓기는 듯한 작은 행동 하나가 이미 수년 전부터 누적된 신호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신호를 알아채는 것이고, 그다음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진단 이후 연민의 시선을 갖게 되면 보호자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 변화가 환자에게도 분명히 전달됩니다.
치매 유병률이 높아지는 고령화 시대에,
이 글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분들께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시고, 주변의 전문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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