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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그때 시어머니의 행동이 병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까다로운 성격이라고만 여겼습니다. 돈이 없어졌다며 집 안 누군가를 도둑으로 모는 그 상황이, 훗날 치매의 전조증상으로 불리는 행동 패턴이었다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전조증상인 줄 몰랐던 그 시절 — 건망증과 기억상실의 차이

치매와 건망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근본부터 다릅니다. 건망증은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치매는 뇌 세포 자체가 손상되는 명확한 질환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차이는 '사건의 일부를 잊느냐, 사건 자체를 부정하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약속 장소나 시간이 가물가물한 것은 건망증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다"고 단정 짓는다면, 그건 기억상실(memory loss)의 영역으로 봐야 합니다. 기억상실이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이 뇌에서 아예 지워진 상태를 뜻합니다.

시어머니는 밖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돈이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찾아보지도 않고, 곧바로 누가 들어와 훔쳐갔다고 단정짓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친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혼수도 스스로 마련해 시집온 터라, 도둑 취급을 받는 그 상황이 그야말로 모욕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억울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면 시어머니 친구분들이 빌린 돈을 갚겠다며 어김없이 찾아오셨습니다. 없어진 돈의 행방이 그렇게 밝혀지고 나서야, 저는 조금씩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끝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행동은 치매 초기에 나타나는 의처증·의부증과 유사한 피해망상적 증상과도 연결됩니다. 피해망상(persecutory delusion)이란 실제로 아무 일이 없었음에도 주변 사람이 자신을 해치거나 물건을 훔쳐간다고 확신하는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치매의 정신행동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의 대표적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출처: NHS (영국 국립보건서비스)

당시 저는 그걸 병적인 증상으로 읽을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시어머니 성격이 원래 그런 분이구나' 하고 버텼을 뿐입니다.

  • 건망증: 노화에 따른 자연 현상, 힌트를 주면 기억 회복 가능
  • 기억상실(치매): 뇌 세포 손상에 의한 질환,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지워버림
  • 피해망상적 증상: 치매의 정신행동증상(BPSD) 중 하나로, 도둑 의심이 반복되는 패턴이 대표적
  • 전조증상을 성격 문제로 오인하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음

요약: 건망증은 노화 현상이고 치매는 뇌 세포 손상 질환이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복적인 도둑 의심이 나타난다면 치매 전조증상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시집살이의 진짜 고통 — 반복되는 오해와 제가 얻은 것

그 시절 제 시집살이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몸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적 피로야 자고 나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됐지만, 의심받는다는 심적 고통은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더 복잡했던 건 시어머니가 저를 직접 의심하지는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너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신 아들, 제 남편을 도둑으로 모셨습니다. 며느리는 믿으면서 아들은 의심하는 그 아이러니가 제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였습니다. 남편 입장에서도 여간 황당한 상황이 아니었을 텐데, 저는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인지기능 저하(cognitive decline)는 단순히 기억만 나빠지는 게 아닙니다. 인지기능이란 판단, 언어, 공간 지각, 문제 해결 등 뇌가 수행하는 고차원적 작용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의심이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돌봄 현장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 가장 큰 의심의 대상이 되는' 역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중앙치매센터

제가 그 반복되는 승강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패턴을 이해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없어진 돈이 신고됐다 싶으면, 저는 일단 시어머니 방부터 뒤졌습니다. 엉뚱한 서랍이나 옷 안에서 나오는 경우가 꽤 됐습니다. 아니면 며칠 기다리면 누군가 갚으러 왔습니다. 이 흐름을 알고 나서야 저도 감정 소모 없이 상황을 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지식의 문제였습니다. 치매의 전조증상, 정신행동증상(BPSD), 인지기능 저하 같은 개념을 그때 조금만 알았더라면 시어머니께 훨씬 일찍 도움을 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아쉬움이 지금도 남습니다.

 

요약: 치매 초기의 반복적 의심 행동은 인지기능 저하에서 비롯된 증상이며, 이를 성격 문제가 아닌 질환으로 인식하는 것이 돌봄 가족 모두의 고통을 줄이는 출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건망증과 치매, 정확히 어떻게 구분하나요?

A. 가장 명확한 기준은 '사건의 일부를 잊느냐, 사건 자체를 부정하느냐'입니다. 약속 시간이 기억 안 나는 것은 건망증이지만, "나는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다"고 단정한다면 치매 증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힌트를 줬을 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으면 건망증 쪽에 가깝습니다.

 

Q. 어르신이 물건 도둑 의심을 반복하면 꼭 치매인가요?

A. 반드시 치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인 도둑 의심은 치매의 정신행동증상(BPSD) 중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패턴처럼 반복된다면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그 신호를 단순히 성격 탓으로 넘겼다가 치료 시기를 놓쳤습니다.

 

Q. 치매 전조증상, 얼마나 일찍 나타날 수 있나요?

A. 치매는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뇌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기억력 저하, 반복적인 의심, 물건 위치 혼동 같은 초기 신호가 일상에서 먼저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조증상 단계에서 발견할수록 인지기능 저하의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Q.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어떻게 감정을 관리하나요?

A. 제가 직접 겪어보니,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감정 소모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매번 억울하게 반응하는 대신, '이건 병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인식하면 조금 거리를 둘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고, 저도 면역이 생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론

제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감을 키우기 전에 먼저 치매 전조증상에 관한 정보부터 찾아봤을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의 반복적인 도둑 의심, 기억상실에 가까운 부정, 아들을 향한 피해망상적 발언들이 모두 인지기능 저하의 신호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무지가 서로를 얼마나 많이 소진시켰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주변에 어르신을 가까이서 돌보는 분이라면, 이상한 행동이 반복될 때 성격 탓보다 먼저 정신행동증상(BPSD) 가능성을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뒤늦게 깨닫고 아쉬워하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soltee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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