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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치매가 기억력 문제인 줄만 알았습니다.
물건을 숨기고, 방금 한 약속을 5분 만에 잊고,
하루에도 수십 번 이불을 꺼냈다 넣는 행동이 이렇게까지 일상을 통째로 삼켜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시어머님을 곁에서 모시며 제가 겪은 시행착오,
그중에서도 통장 하나를 두고 벌어진 황당한 숨바꼭질은 치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입원까지 가게 된 배경 — 약 조절이 먼저였습니다
의사로부터 입원을 권유받았을 때, 처음엔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치매 치료에서 입원이 필요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항정신병약물(Antipsychotics) 용량 조정 때문입니다.
여기서 항정신병약물이란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초조, 공격성, 망상 같은 행동심리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을 완화하기 위해 처방되는 약물을 말합니다. 환자 상태를 직접 관찰하면서 양을 세밀하게 맞춰야 하므로 입원 환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 학교 문제로 병상을 직접 지킬 수 없어 간병인을 두었습니다. 간병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거의 한 달이 흘렀습니다. 치매 증상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고, 육체적으로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신 시어머님을 다시 집으로 모시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퇴원 후 의사가 당부한 말이 있었습니다. 수면진정제(Sedative-hypnotics)를 소량 처방해줄 테니, 환자가 심하게 안절부절못하거나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만 아주 소량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수면진정제란 신경계를 억제해 불안과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는 약물로, 치매 환자에게는 낙상 위험이 있어 최소한으로만 써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퇴원 후 체력이 좋아지신 만큼 행동은 오히려 더 거칠어졌고, 저는 그 말의 무게를 몸으로 실감하게 됐습니다.
통장 숨바꼭질 — 제가 틀렸던 이유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와 약속을 정해두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습니다.
"통장은 제가 이 서랍에 보관할게요, 절대 손대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를 드렸고, 시어머님도 그 순간에는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5분 사이에 통장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건 시어머님 탓이 아니었습니다. 치매로 인한 기억 인출 장애(Memory Retrieval Deficit)가 진행된 상태에서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저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 인출 장애란 새로운 정보가 뇌에 저장되지 않아 방금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누군가 통장을 훔쳐간 것이 틀림없는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행동 패턴은 대단히 집요했습니다. 옷장, 카펫 밑, 도자기 안, 가방 속 — 하루에도 여러번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제가 보관하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려달라고 성화를 부리셨다는 점입니다. 결국 제가 택한 방법은 천장 가까이 높은 곳에 통장을 걸어두고, 찾으신다고 하실 때마다 거기 있다고 보여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저로선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물건 숨기기 행동은 치매의 행동심리증상(BPSD) 중 '수집 및 은닉 행동(Hoarding behavior)'에 해당합니다.
출처: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60% 이상에서 이런 행동심리증상이 나타나며, 이를 논리나 약속으로 제어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환자의 불안과 흥분을 키울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반복한 실수 — 이렇게 하지 마세요
제 경험상 아래 행동들이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 환자와 '약속'을 강조하며 반복적으로 상기시키기 → 오히려 불안과 집착을 강화했습니다
- 물건을 빼앗아 보관하기 → 환자 입장에서는 도난으로 인식되어 더 큰 흥분 상태로 이어졌습니다
- 증상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같은 방식을 반복하기 → 행동 증상은 기다린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 하루에도 수십 번의 이불·옷장 정리를 바로잡으려 하기 → 에너지만 소진됐고, 시어머님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응 전략 — 싸우지 않는 쪽이 이기는 간병입니다
제가 실수를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은, 치매 간병에서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순간 이미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의 현실과 제 현실이 달랐고, 저는 계속 제 현실로 시어머님을 끌어오려 했습니다. 그게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치매 간병은 환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연습이지, 환자를 현실로 불러오는 싸움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방식 중 하나가 현실 부정 대신 감정 공감(Validation Therapy)입니다. 검증 치료(Validation Therapy)란 치매 환자의 말과 감정을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공감하고 수용함으로써 불안을 줄이는 접근법입니다. "통장이 없어졌다"고 하시면 "맞아요, 답답하시죠"라고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출처: 보건복지부의 치매 가족 교육 자료에서도 이 방식을 행동심리증상 대응의 첫 번째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질적인 환경 조정도 중요합니다. 중요한 물건은 애초에 손에 닿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처럼 천장 가까이 걸어두는 방식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환자가 인식할 수 없는 수준에서 공간을 정돈하는 환경 수정 전략(Environmental Modification Strategy)은 실제로 행동심리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환경 수정 전략이란 약물이나 설득 없이 물리적 공간을 조정해 문제 행동이 발생할 여지를 줄이는 비약물적 접근을 말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환자를 바꾸려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불장을 들었다 놨다 하시는 것을 막으려 했던 에너지로, 차라리 자주 꺼내시는 물건들을 꺼내기 편한 낮은 선반에 정리해드렸더니 이불장을 건드리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매 환자가 물건을 숨기는 게 다 치매 증상인가요?
A. 일반적으로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치매로 인한 물건 숨기기는 빈도와 패턴이 다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장소를 바꾸고, 자신이 옮겨놓고도 누군가 훔쳐갔다고 확신하는 것이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이는 행동심리증상(BPSD)의 수집 및 은닉 행동에 해당하며, 단순 건망증과는 구분됩니다.
Q. 치매 어르신이 통장, 현금을 자꾸 숨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A. 가장 먼저 할 일은 중요한 금융 문서를 아예 환자의 손이 닿지 않는 구조로 바꾸는 것입니다. 저처럼 설득이나 약속으로 막으려 하면 오히려 반복적인 갈등과 흥분 상태만 생깁니다. 통장은 복사본을 보여드리는 방법도 실제로 사용되며, 환경 수정 전략의 일환입니다.
Q. 치매로 입원하면 증상이 좋아지나요?
A. 치매 자체를 치료하는 입원이라기보다는, 항정신병약물 등의 용량을 안전하게 조정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제 경우에도 한 달 가까이 입원했지만 치매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체력이 좋아진 채로 퇴원하면서 행동 증상이 더 활발해졌습니다. 입원의 효과를 약물 조정 이상으로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Q. 치매 간병인은 꼭 있어야 하나요?
A. 가족 구성원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치매 어르신 한 분이 하루 종일 만들어내는 상황들은 혼자 감당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입원 기간처럼 육체적으로 활력이 있는 상태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간병비 부담이 크더라도 단기 간병인 제도나 치매안심센터의 돌봄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가족 모두의 소진을 예방하는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결론
제가 시어머님 간병을 하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착각은, 충분히 설명하고 약속을 받아두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치매를 '기억이 조금 나쁜 상태' 정도로만 이해했기에 생긴 오해였습니다. 행동심리증상(BPSD)은 논리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고, 제가 맞서 싸울수록 저만 지쳐갔습니다.
정리하면, 치매 간병에서 환경을 먼저 바꾸고, 환자의 감정에 먼저 공감하고, 중요한 물건은 처음부터 손이 닿지 않게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제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방향입니다.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 분이라면 저처럼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빠른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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