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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의 70% 이상이 보호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행동심리증상(BPSD)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교과서가 아닌 시어머님 곁에서 매일 맞닥뜨리며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간병도 요령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틀니 관리, 이론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일반적으로 틀니(의치) 관리는 식후 제거 → 세척 → 보관의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의치란 자연치아를 상실한 자리에 착용하는 인공 보철물로, 구강 내 세균 번식을 막으려면 하루 최소 한 번은 반드시 빼서 세척해야 합니다. 치과 교과서에도, 어느 요양 지침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시어머님은 오랜 치통의 기억 속에 갇혀 틀니를 진짜 이로 착각하셨습니다. 젊으셨을 때 치아가 일찍 상하면서 극심한 치통을 겪으셨던 탓에,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서 그 공포의 기억이 도로 살아났던 것입니다. 누가 입 근처에 손을 대려 하면 두 손으로 입을 꼭 감싸 쥐고 "이가 부스러진다"며 절대로 놓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양치 시간이 전쟁이었습니다. 며느리인 제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 남편을 불러 큰 소리로 설득해야만 입을 여셨습니다. 아들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치매 환자가 감정 기억을 비교적 오래 보존하기 때문인데, 이를 정서적 기억 보존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사실이나 날짜는 잊어도 가까운 사람에 대한 감정은 훨씬 오래 남는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저는 양치질 한 번에 남편을 불러야 하는 날이 한두 달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돈을 요구하는 행동, 왜 치매 환자에게 흔한가
치매의 대표 증상 중 하나로 행동심리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이 있습니다. 여기서 BPSD란 기억력 저하 같은 인지 증상과 별개로 나타나는 이상 행동과 정신 증상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망상, 환각, 초조, 무단 배회, 그리고 반복적인 금전 요구가 모두 여기 해당됩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시어머님은 병문안을 오는 사람이면 이웃이든 친지든 가리지 않고 "돈 좀 놓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쌀을 사야 한다고도 하셨고, 틀니를 새로 해 넣어야 한다는 이유를 대실 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생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사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쓰실 수 있는 재력이 있으셨음에도, 오히려 더 강하게 돈을 쥐려 하셨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불안 기반 집착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질수록 환자는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쥘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는데, 많은 경우 그게 돈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시어머님에게 돈은 안도감 그 자체였습니다.
방문객이 올 때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이 제게도 민망했고, 찾아오는 분들도 난감해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단순히 "드리지 마세요"라고 말리기도, 그렇다고 매번 실제 돈을 드리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조화폐, 속임수인가 간병 요령인가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문구점에서 파는 장난감 모조지폐였습니다. 시어머님은 그 시기에 이미 지폐의 액수는 물론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셨고, 돈과 비슷한 크기의 빳빳한 종이면 돈으로 여기셨습니다. 처음에는 속인다는 죄스러움이 앞섰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 마음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방문객에게는 사전에 조용히 설명을 드리고,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그 모조화폐를 건네도록 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그냥 기분 좋게 실제 돈을 드리기도 했지만, 자주 오시는 분들에게 매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조화폐 덕분에 방문객도, 저도, 시어머님도 그 순간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에게 사실과 다른 것을 제공하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현실 검증(Reality Orientation)이 오히려 환자를 더 불안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현실 검증이란 환자에게 현재의 사실을 반복적으로 인식시키는 치료 기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지 손상이 심한 단계에서는 이 방식이 혼란과 흥분을 오히려 부추기는 경우도 있어, 임상 현장에서는 검증 요법(Validation Therapy) — 즉 환자의 감정과 세계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접근법 — 이 병행됩니다(출처: 한국치매협회). 모조화폐는 제가 모르는 사이 그 방향에 가까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조화폐 활용 시 제가 실제로 지킨 원칙
아무 준비 없이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 방문객에게 반드시 사전 설명을 드린다. 갑자기 건네면 본인이 더 당황한다.
- 실제 돈과 섞어두지 않는다. 시어머님이 외부에 꺼낼 일을 미리 차단한다.
- 요 밑에 모아두시는 것을 억지로 빼앗지 않는다. 그 행위 자체가 안도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주기적으로 수량을 확인하되, 시어머님이 보는 앞에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돈의 노예로 사신 삶이 남긴 가르침
시어머님의 요 밑에는 그렇게 모조화폐가 쌓여갔습니다. 액수도, 진위도 모르시면서 그것을 들춰보고 흐뭇해하시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표정 앞에서 저는 복잡한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은 평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신 분이 아닙니다. 가족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오랜 친구들에게 멋지게 베풀 수 있는 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돈을 쓰는 것보다 쥐고 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사셨습니다. 돈이 많아도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직접 곁에서 확인한 셈입니다.
치매가 모든 것을 앗아가면서도 마지막까지 남기는 것이 돈에 대한 집착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단순한 간병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지, 재산을 소유하되 그것에 소유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시어머님이 제게 뜻하지 않게 남겨주신 가장 큰 교훈이었습니다.
간병은 체력전이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전입니다. 요령을 찾는 것이 환자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경우엔 요령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시어머님 곁에 더 오래, 덜 지쳐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매 환자가 틀니를 빼려 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인지 손상이 깊어진 단계에서 논리적 설명은 오히려 환자를 더 흥분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가 가장 신뢰하는 가족의 목소리를 활용했고, 식사 직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루틴으로 만들어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담당 치과나 요양 담당자에게 개별 접근법을 함께 상의하는 것도 권장합니다.
Q. 치매 환자에게 모조화폐를 써도 괜찮은 건가요?
A. 속임수라는 부담감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임상 현장에서도 현실 검증보다 검증 요법(환자의 감정 세계를 수용하는 방식)이 말기에 가까울수록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모든 상황에 맞는 정답은 아니므로, 담당 의사나 치매 전문 요양 기관과 먼저 상의한 뒤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치매 환자가 방문객에게 돈을 요구할 때 방문객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사전에 보호자가 방문객에게 조용히 설명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요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보호자가 미리 상황을 공유하고, 필요하면 모조화폐 같은 대안을 준비해두면 서로가 덜 난감한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Q. 치매 간병에서 BPSD 증상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A. BPSD, 즉 행동심리증상은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비약물 치료에는 규칙적인 일과 유지, 환경 단순화, 검증 요법 등이 포함됩니다. 중앙치매센터에서는 보호자를 위한 BPSD 대응 가이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결론
간병은 정답이 없는 길입니다. 교과서대로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훨씬 많고, 그 간극 사이에서 요령을 찾아가는 것이 실제 간병인의 일입니다. 저는 모조화폐 하나로 시어머님도, 방문객도, 저 자신도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덜 힘든 방법을 찾는 것 자체가 좋은 간병입니다.
치매 간병 중이라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중앙치매센터나 지역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하면 보호자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령을 아는 것이 더 오래, 덜 지쳐서 곁에 있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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